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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Yes를 외칠 때 No를 외쳤던 사마천

도재훈 기자 | 기사입력 2022/01/31 [16:19]

모두가 Yes를 외칠 때 No를 외쳤던 사마천

도재훈 기자 | 입력 : 2022/01/31 [16:19]

[데일리차이나= 도재훈 기자]

▲ 산시성 한청시 당가촌의 사마천 동상 <사진=百度>  © 데일리차이나

 

중국 역사서의 근간은 이의의 여지없이 사마천의 <사기(史记)>이다. 중국 최초의 기전체 역사서로, 사기의 기전체 서술 체계는 역사서 서술 형식의 보편 진리인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 했다. 사기 이후의 제반 역사서가 기전체의 형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사기(史记)>는 중국 역사서의 보편 토대가 된 것이다.

사마천의 관점과 사상이 가장 잘 반영되었다 평가되는 텍스트는 <사기(史记)>의 <백이 열전(伯夷列傳)>편이다. 이는 삼강오륜과 같이 봉건주의적 사상이 고착되어 있던 과거 중국의 역사서가 제후나 왕 위주의 사건을 숭배하기보다는 각 주체의 객관적 사건을 그대로 서술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마천의 생각을 서술할 때 왕에게 아첨하는 내용이 아닌 자신의 관점을 소신껏 피력하였기 때문이다. 반고의 <한서(汉书)>와 사마천의 <사기(史记)>를 비교해보면, <한서(汉书)>는 친왕권 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점에서, 사회 부조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기(史记)>보다 역사서로써 한시 환영받았다. 이는 대부분의 정사가 왕 위주의 긍정적 이야기 혹은 시대가 지향하고 있는 사상을 근간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반증한다. <사기(史记)>는 자신이 속한 학문 파의 사상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가 사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소신껏 유가가 제창하는 진리에 의문을 표하고 문제를 제기한 유일무이한 문학 작품이다. 이처럼 사마천은 하나의 잣대, 관점을 고집하거나 자기 신념을 강요하지 않았다.

 

백이 열전에 등장하는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 후기 사람이다. 제30대 왕인 주왕이 즉위한 BC11 세기 경 상나라는 떠오르는 해인 주나라의 무왕에 의해 멸망한다. 상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의 세상이 열리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받기를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가 최소한의 조차도 간신히 연명하다 아사한다. 백이와 숙제의 삶에 대해 공자는 ‘지나간 원한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거의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을 구하여 얻었으니 세상에 원망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았다’라고 평가하였다. 즉 유가의 근본 사상인 인()을 구현했기에 이를 칭찬한 것이다. 반대로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의 삶이 슬프고 비통했을 것이라 평가한다. 李漢祚(이한조)에 따르면 그들의 일시인 <채미가(采薇歌)>에 상나라 주왕을 원망하는 내용과, 고사리만 캐어 먹다 굶어 죽게 되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의 삶을 투영하여, 옳은 도()를 걷는 사람 중 재앙을 만나는 사람이 과반수라는 점에서 과연 하늘의 도()가 옳은지 의문을 제기한다. 안연 역시 단표누항하고 절차탁마 하였다고는 하지만 공자의 기미에 붙었기에 그 행실이 두드러진 것이고, 하물며 백이와 숙제 역시 공자의 칭찬이 없었으면 그 명성이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부기미는 출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백락과 천리마(伯乐与千里马)의 이야기처럼 자신을 알아봐 줄 사회적 신뢰와 지위를 겸비한 은사를 만나지 못한다면, 마구간에서 생활하는 명마처럼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유는 <잡설(雜說)>에서 세상엔 백락이 존재한 후에라야 천리마도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마천은 이사장군을 비판하고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억울하게 궁형에 처했기에 부기미의 불공평함을 각기삭골 끝에 깨닫는다. 자신의 처지와 부기미라는 사회 부조리를 후대에 알리기 위해 <사기(史记)>를 분골쇄신 편찬한다. 유가의 국한되지 않는 불편부당한 사마천의 관점과 사상이 투영되었기에 <열전(烈传)>편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연구 가치를 지닌다. 특히 <열전(烈传)>의 첫 편인 <백이 열전(伯夷列傳)>편의 관점은 <사기(史记)>를 집필한 목적과 의도를 자세히 밝히고 있는 제130권 <열전(烈传)> 마지막편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와 궤를 같이 하기에 <사기(史记)>의 정수라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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