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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외교와 중국

KCAU | 기사입력 2021/08/27 [14:41]

공공외교와 중국

KCAU | 입력 : 2021/08/27 [14:41]

[데일리차이나=KCAU 한수현, 임재성, 김채림, 김태우]

 

▲ 과거 1971년 미국, 중국과 핑퐁외교가 펼쳐진 시기에 중국을 방문한 미국 선수단. 이 사건도 대표적인 공공외교 사례 중 하나이다. <사진=百度 제공>  © 데일리차이나

 

우리가 '중국' 하면 가장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그럼 외국인이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가? 작년 한국관광공사가 만든 홍보였던 "Feel the Rhythm of Korea"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만든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 사이에서 무척 화제가 되었다. 전통을 재해석하고 즐기는 자의 시선에서 만들며 전형적인 국가, 도시 홍보, 공익광고의 틀을 탈피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코로나로 관광이 멈춘 시기에 외국인에게 한국이란 브랜드가 기억되길 바랐다고 한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각국은 디지털 홍보를 강화하고 이와 함께 공공외교도 함께 주목하고 있다.

 

공공외교가 등장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냉전의 종식이라는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가 있다. 냉전기에는 미국과 소련을 양대 진영으로 한 이념과 군사 및 경제적 대결로 인해, 정부 간 안보를 중심으로 한 전통 외교가 중시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면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민간중심 외교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어 9.11 사태로 인한 폭력적 극단주의가 확산되고, 전통 외교 방식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의 필요성이 빈번히 언급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외교 환경도 변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21세기에 나타난 추세를 반영하여 20019·11사태를 기점으로 기존의 공공외교와 21세기 공공외교를 구분하기도 한다.)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했으며 글로벌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외교의 방향은 군사, 경제력 등 하드파워에서 교육, 학문, 예술 등 '매력을 통해 호감과 신뢰를 이끌어내는 힘'인 소프트파워로 변해갔다. 이렇게 등장한 게 바로 공공외교이다.

 

공공외교는 공중(公衆)의 태도가 외교정책의 형성과 집행에 대해 갖는 영향력에 대처하는 것이라는 정의에서 출발했다. 이 용어와 개념은 1965년 미국 터프츠대학교 플레처 스쿨에 에드워드 머로 공공외교센터가 설립되면서 처음 사용된 이후, 수정과 확대를 거쳐왔다.

 

공공외교란

공공외교란 외국 국민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 전통, 문화, 예술, 가치, 정책, 비전 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외교 관계를 증진시키고, 우리의 국가 이미지와 국가 브랜드를 높여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높이는 외교활동을 말한다.

 

정부 간 소통과 협상 과정을 일컫는 전통적 의미의 외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화 · 예술, 원조, 지식, 언어, 미디어, 홍보 등 다양한 기제를 활용하여 외국 대중(Foreign Public)에게 직접 다가가 그들의 마음을 사고, 감동을 주어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공공외교의 기본 컨셉이다. (대한민국 외교부)

 

이처럼 공공외교는 그 주체와 대상에서 전통 외교와 다르다. 전통 외교가 주로 정부 대 정부 간 공식적으로 행해진다면, 공공외교의 주체는 정부는 물론 민간이 포함되며 그 대상도 타국의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까지 포함된다. 그 수단도 군사나 경제보다는 주로 문화와 미디어 등이다. 그러나 공공외교도 결국은 국가의 이익 실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전통 외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대외 공공외교의 실현

중국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공공외교와 유사한 외교 형식이 등장했다. 신중국 건국 초기 서방 국가들의 봉쇄를 깨고, ‘인민 외교라는 형식으로 신중국 공식 외교 발전에 발맞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돌입한 이후 민간외교라는 개념이 정식으로 사용되었다.

 

민간외교는 크게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신중국 건국부터 60년대까지 사회주의 국가와의 민간교류를 위주로 진행하였고, 일본 등과 우호적인 왕래 및 무역 관계를 발전시켜 70년대 초 중 반 중 · 일 관계 정상화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했다. 2단계인 60년대 말부터 70년대 말까지 진행되었으며 서구 선진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민간 왕래부터 시작하여 이 일례로 핑퐁외교가 있다.

 

*핑퐁외교: 1971년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열린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끝난 지 나흘이 지난 410, 미국 탁구대표단과 일부 미국 신문사 기자들이 홍콩을 거쳐 북경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1949년 이래 처음으로 중국 경내에 들어오는 미국인이었다. 일주일 동안 중국 탁구팀과 친선경기를 치르고 만리장성, 이화원(颐和园) 등을 둘러봤으며, 이 소식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작은 공(탁구공)이 큰 공(지구)을 돌린다”(小球转动大球)는 말을 낳으며 중·미 교제의 물꼬를 텄다. 이듬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중·미 관계가 정상화됐다.

 

3단계는 1970년대 말 이후 현재까지로 대외 개방의 실행과 확대에 따라 외교활동이 더욱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2008년 개최된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공공외교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은 인문외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인문외교는 사상 외교, 문화 외교 그리고 인민 외교로 나눌 수 있다.)

 

중국의 인문외교는 중국 국민과 세계인의 교류를 확대해 상호 소통과 이해를 증진하고 궁극적으로 중국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려 중국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나라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이렇듯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자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공공외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공공외교 실현

인문교류를 충실히 확대하기 위해서 한국과 중국은 일련의 정부 간 협의를 체결해 놓고 있다. 200411월 전 세계 최초로 제1호 공자학원이 서울에 세워졌고, 20085, 이명박 전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여 한중 양국 고등교육 학력 학위 상호인정 양해 각서를 체결하였다. 양국이 고등교육 영역에서 실질적인 교류와 합작을 진행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20088,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은 한국을 방문하여2008-2010 한중 교육 교류 협의를 체결하였다. 또한, 20136월 제1차 한중 공공외교 포럼을 시작으로 매년 양국 정계·학계·민간단체·언론 분야 석학들이 만나 다양한 주제로 논의하며 교류하고 있다.

 

1992년 수교 이후, 한중관계는 빠르게 발전하여 공공외교를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기초적인 배경이 되었다. 한중관계에는 세 가지 이정표적인 사건이 있는데, 하나는 1998년의 협력 동반자 관계이고, 다음은 2003년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이며, 마지막은 2008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이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최대 수출시장, 최대 수입국, 최대 해외투자 상대국, 최대 유학생 유입국, 최대 해외여행 목적지이다.

 

한류가 중국에서 유행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에도 한풍이 불고 있다. 공자학원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문화를 이해하려는 한국인의 열정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차이는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비교해 본다면, 그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문화적 공통성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기초 위에서 공공외교와 인문교류가 좀 더 효과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인터넷 시대에서는 정보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고 때로는 거짓이 사실로 둔갑하기도 한다. 모 매체는 특정 한국 학자의 관점을 토대로 조조(曹操)와 쑨원(孫文), 공자(孔子), 심지어 서시(西施)까지 한국인이라는 소식을 다룬 바 있다. 만리장성은 한국인이 만든 것이고 중국 신화는 한국에서 기원하였고 한자는 한국인이 발명한 것이라는 주장과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보도가 나오면 곧바로 복제되어 혐한’(한국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나 그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대부분 근거가 부족하거나 본래의 의도를 왜곡한 것이거나 혹은 한 개인의 관점을 한국인의 보편적 입장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한국과 대중국 공공외교가 필요한 배경은 결국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는 양 국가 간의 이슈와 이로 인한 양국 국민 간의 민족주의 감정의 충돌이다. 그리고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하의 대중 영향력의 변화, 외교 대상으로서의 대중의 중요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공공외교와 SNS를 통한 공공외교의 부각

공공외교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른 국가의 국민과 문화적 상호 교류를 함으로써 외교 관계가 형성됨으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 중국의 공공외교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미디어를 통한 선한 영향력의 전파이다. 공공외교는 한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중점이 된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국가 선호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인이 할 수 있는 공공외교가 되는 것이다. 이 사실관계는 어느 국가 든 간에 성립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국민들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2021,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는 ‘World Wide Web’ , 인터넷이 전 세계를 거미줄처럼 연결시키고 있다. 네트워킹이라는 과학기술이 점점 발전되며 우리는 인터넷에 있는 모든 나라의 사람과 "connection"을 만들 수 있다. 즉 공공외교의 관점으로써 말하자면 인터넷 세계는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현재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다. 특히 "Social Network System"이 발달하며, 전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겨났다. 스마트폰의 출시로 인해 텔레비전과 컴퓨터 없이 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SNS이다. 다른 국가와의 문화적 교류가 SNS상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민간인끼리 "세계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SNS를 통한 공공외교가 점점 부각되고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잘 적용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SNS를 통해 한국의 좋은 문화를 담은 컨텐츠 혹은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업로드하는 것이다. 이를 진행하며 우리는 개개인의 SNS상에서의 기본 에티켓을 준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 국가 선호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며 행동해야 할 것이다.

 

공공외교의 향후 행태

앞의 사례와 같이 SNS가 공공외교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크다. SNS를 통한 외교를 우리는 미디어 외교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높아지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세계를 연결하고 다른 나라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 플랫폼을 이용한 상호 소통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공공외교 형태이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한국인 개개인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더욱더 커져가고 있고 SNS, 소셜 플랫폼, 인터넷과 같은 곳에서 우리 개개인이 전 세계인에게 보여주게 될 우리의 행보가 우리나라 이미지, 미래의 외교, 더 나아가서 다른 영역에서의 대외협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국 공공외교의 과제

 

중국은 경제력 세계 2위 추구 과정에서 대두되고 있는 중국 위협론에 대응하여 책임대국론’, ‘평화부상론등을 발표하며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이미지를 확산하기 위해 공공외교를 적극 추진 중이다. 이에 따른 중국의 공공외교 정책에 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모든 외국인이 부정적이 평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중국인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많은 예산을 공공외교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의 공공외교는 당 중앙의 대외선전판공실과 국무원 신문판공실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중국의 공공외교의 대부분은 정부의 지시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고 이러한 중국 외교는 수십 년 동안 축적되어온 국내 선전활동과 경험을 토대로 지속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경험과 국가가 통제하는 도구를 통해 중국의 공공외교는 이제까지 비교적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왔고 한편으로 그것이 앞으로 중국 공공외교의 한계가 될 수도 있다. 향후 중국이 공공외교 행보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할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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