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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열전]시성(詩聖), 두보(杜甫)

서정욱 | 기사입력 2018/07/18 [11:41]

[역사인물열전]시성(詩聖), 두보(杜甫)

서정욱 | 입력 : 2018/07/18 [11:41]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나라가 망하니 산과 강만 남아 있고,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성 안에 봄이 오니 풀과 나무만이 무성하구나.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시절을 생각하니 꽃이 나의 눈물을 흩뿌리게 하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이별의 한은 새마저 나의 마음을 놀라게 하는구나.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봉화불(전쟁)이 석 달 동안 계속되니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집안의 소식은 만금보다 값지도다.

白頭搔更短(백두소경단) 

흰머리를 긁으니 또 짧아지고,

渾欲不勝簪(혼욕부승잠) 

(남은 머리를) 다 모아도 비녀도 꽂지 못하겠구나.

 

두보가 안사의 난 당시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지은 '춘망(春望)'이라는 시다.

 

성당시대(盛唐時代) 시인으로 시성(詩聖)으로 추앙 받는 두보에 대해 살펴보자.

 

 

▲ 두보_위키피디아     © 데일리차이나


 

출생과 어린 시절

 

712년 허난성(河南省) 궁현(鞏縣)에서 ‘문장사우(文章四友)’의 한 사람인 두심언의 손자로 태어난 두보,

그는 일곱 살 때 시를 짓고, 그의 글은 한나라의 반고나 양웅의 글에 비견할 만하다고 칭찬받았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

 

그는 스스로 만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자평했지만, 관운은 없어 과거에 연이어 낙방하고 결국 명산대천을 주유하며 술을 마시며 시를 읊는데 이때 지은 '망악(望嶽)'이라는 시를 감상해 보자.

 

태산이 어떤가 했더니

제나라, 노나라에 걸쳐 가없이 푸르구나.

신령함과 빼어남이 모두 모이고

산(山) 남북이 밤과 새벽을 가른다.

층층 구름에 흉금을 씻어내고

눈 크게 떠 돌아가는 새 바라본다.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

뭇 산의 작음을 굽어보리라.

 

 

▲ 이백_위키피디아     © 데일리차이나



  

이백(李白)

 

'한 말 술을 마시면 곧 백 편의 시'를 짓는 격렬하고 낙천적인 성품으로, 인생과 자연의 불가사의를 즐겁게 노래한 도가적 경향의 이백,

 

티끌만한 유감도 남길 수 없는 경지에 달하기 전에는 작품에서 손을 떼지 않는 엄정함을 지닌 유가적 경향의 두보,

 

744년 낙양에서 둘은 처음 만나게 되는데 열한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친구처럼 술 취한 가을 밤 잠자리 같이하고, 해 뜨면 손잡고 행로를 같이한다.

 

조국의 웅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어두운 시대를 극복하려는 애국적 열망을 가졌지만, 끝내 높은 출세를 하지 못하고 일생을 방랑 생활로 보내면서 시와 술로 울분을 달랜 이백과 두보,

 

두 사람의 작품에는 그들이 함께 살았던 동시대의 아픔이 담겨 있는데, 이백이 타고난 자유분방함으로 인간의 기쁨을 드높이 노래했다면, 두보는 인간의 고뇌에 깊이 침잠하여 시대적 아픔을 깊은 울림으로 노래했다고 봐야겠다.

 

안사의 난(755~763)

 

당나라 현종 때 안녹산과 사사명 등이 일으킨 반란으로 중국 인구의 70%가 감소되어 중국 역사상 최악의 잔혹한 전쟁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전쟁.

 

"짐은 마르더라도 천하와 백성들이 살찌면 아무 여한이 없다."

 

'개원의 치(開元之治)'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 감각과 재능이 뛰어났던 현종, 그가 양귀비와의 사랑 놀음에 빠지면서 당나라는 번영의 길에서 급선회하여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청해의 변두리에 옛부터 널려 있는 백골에는

옛 귀신 울음에 새 귀신의 울음이 더해지는데

흐린 날 내리는 궂은 빗소리만 처량하구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백골이 들판에 널려 있는 처참한 정경을 묘사한 '병거행(兵車行)'이란 이 시는 그의 시 세계가 현실주의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적인 작품이 된다.

 

시사(詩史)

 

757년 2년동안 적에게 사로잡혀 있던 그는 끝내 탈출하여 숙종으로부터 좌습유라는 벼슬을 받게 되나 이후 화주의 사공참군으로 다시 좌천되는데··

 

어느 날 그는 화주로 오다가 백성들이 관가의 폭정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격분하여 '신안리(新安吏)', '동관리(潼關吏)', '석호리(石壕吏)' 등 ‘삼리(三吏)’를 쓰게 된다.

 

또한 신혼부부가 전란으로 헤어지고, 늙은 노인이 군대에 끌려가며, 수많은 백성들이 집을 잃고 길거리를 헤매는 참상들을 목격하고 '신혼별(新婚別)', '수로별(垂老別)', '무가별(無家別)' 등 ‘삼별(三別)’을 쓰게 된다.

 

이와 같은 그의 시들은 당시 시대를 비추는 거울과 같았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시사(詩史)’라고 부르게 된다.

 

마치며

 

옛날부터 들어온 동정호,

이제야 악양루에 올랐다.

오나라 초나라 땅은 동남으로 갈라졌고,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물 속에 떠 있다.

친구에게서는 편지 한 장 없고,

늙고 병든 나에게는 배 한 척 밖에 의지할 곳 없구나.

관문 북쪽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끊임없고,

난간에 기대니 눈물만 줄줄 쏟아지는구나.

 

그가 지은 '등악양루(登岳陽樓)'란 시인데, 그는 결국 악양을 떠나 방랑하던 중 둥팅호(洞庭湖) 배 위에서 59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게 된다.

 

가난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의 시신은 43년 후 손자 두사업에 의해 비로소 수양산 아래로 이장된다.

 

중국 리얼리즘 시의 대사(大師)로 3천여 수의 시를 지어 시성(詩聖)으로 추앙 받는 두보,

 

그가 50세 무렵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서 지은 '春夜喜雨(춘야희우)'라는 시로 마칠까 한다.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봄이 되니 내리네.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江船火燭明 (강선화촉명) 

강 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청두)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겨울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며, 봄은 자기 차례를 결코 건너뛰지 않는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닐지··

 

글·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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