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가 맑아질 때까지 언제 기다립니까? 당신은 사상가이지만 나는 행동가입니다."

청(淸) 말 사상가인 옌푸(嚴復)가 무장 봉기를 꾀하는 쑨원에게 “중국 인민은 지식이 낮은 단계에 있어 공화 혁명을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하자 그가 한 말이다.

중국 대륙의 공산당이나 대만의 국민당을 포함하여 모든 중국인들에게 국부(國父)로 받들어지는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孫文)에 대해 살펴보자.

출생과 학창시절

1866년 광둥성 샹산(香山)에서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쑨원, 그의 마을은 마카오로부터 불과 30리 떨어진 곳에 있어 그는 어릴 때부터 동양과 서양의 두 문명을 접하게 된다.

그가 받은 교육 역시 마찬가진데 그는 고향에서 전통적 교육을 받은 후, 하와이 이올라니 대학에서 서구 학문을 배운다.

기록을 보니 대학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우상 숭배를 타파한다고 마을의 수호신인 목상(木像)을 절단하는 사건을 일으켜 마을에서 쫓겨났다고 하는데,

불교, 유교, 기독교, 민족종교, 샤머니즘 등 모든 종교의 공존을 주장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그 후 그는 홍콩에서 서의서원(西醫書院)을 졸업하여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데··

혁명의 길로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더 나은 의사는 사람을 고치고, 진정으로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

의학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가지고 청 황실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외국의 침략에 분노를 느낀 쑨원,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청 황실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하와이에서 중국 최초의 근대적 비밀 결사단체인 흥중회(興中會)를 조직한다.

흥중회는 만주족과 청나라를 몰아내고 중원을 회복한 뒤 민주적인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았는데, 그 후 그는 광저우에서 봉기를 계획했으나 사전에 발각돼 국외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1905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혁명에 뜻을 품은 망명가들과 연합해 중국혁명동맹회를 조직했는데, 동맹회는 그가 제창한 민족, 민권, 민생의 삼민주의를 강령으로 채택한다.

먼저 민족주의는 대내적으로 만주족을 타도하고 중화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말하고,

민권주의는 민주 정치 실현을 위하여 모든 국민은 선거권, 파면권, 제헌권, 복결권의 네 가지 권리를 가지며, 이 네 가지 권리 아래에서 입법, 사법, 행정, 고시, 감찰로 5권이 분리되는 것을 말하며,

마지막으로 민생주의는 국민의 생활 안정을 위한 것으로 자본을 억제하고 토지의 평균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삼민주의는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으로 국가를 국민이 공동 소유하고, 정치를 국민이 공동 관리하고, 이익을 국민이 공동으로 누리는 것을 말한다.

한편 동맹회는 출범한 이후 10여 차례 무장봉기를 통해 청조를 타도하고자 하였으나 모두 큰 성과 없이 실패로 끝나는데, 혁명의 불길은 의외로 다른 곳에서부터 치솟게 된다.

신해혁명

1911년 10월 10일(쌍십절), 서구 열강 앞에서 늙고 병든 호랑이처럼 죽어가고 있는 청 왕조에 환멸을 느낀 혁명파 군인들은 마침내 우창(武昌)에서 무력 봉기하고, 한 달이 채 못되어 12개 성(省)이 독립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청 왕조는 종말을 눈앞에 두게 되는데 바로 신해혁명이다.

"민(民)의 공의를 취하고 중(衆)을 위해 복무한다."

다음해 쑨원은 귀국하여 임시 대총통으로 추대되어 총통 선서를 한 후 난징(南京)을 수도로 하는 중화민국을 수립하는데, 이는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아시아 최초의 근대적 공화정부이며, 2,000여 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절대 군주제도가 무너지는 역사적인 순간인 것.

한편 청 조정은 베이양(北洋) 군벌의 위안 스카이(袁世凱)에게 혁명군의 토벌을 명하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 그는 오히려 청 황제를 퇴위시키는 조건으로 쑨원으로부터 대총통의 지위를 이양받는다.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렇다고 청나라와 전쟁을 계속해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은 그의 통 큰 양보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열강의 지원을 받던 위안 스카이는 정권을 잡자 공화제의 이념을 묵살하고 황제 체제의 부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그의 사망 후 각지의 군벌이 할거하며 중국은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이후 그는 제국주의와 군벌의 타도, 농민과 노동자의 해방, 이른바 '연소(聯蘇)', '용공(容共)', '부조농공(扶助農工)'의 기치 아래 공산당과 제휴하여 북벌을 시작하는데,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25년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지들이여 아직도 노력해야 한다." 는 유언을 남기고 간암으로 사망하게 된다.

쑹칭링(宋慶齡)

중국 근대사상 최초로 미국 유학을 한 신여성이었으며, 여성해방 운동가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쑹칭링,

그녀가 주위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지이며 자신보다 스물 여섯이나 많은 쑨원과 결혼을 한 결정적 동기는 단지 쑨원이 '조국'을 사랑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였다.

그만큼 그녀도 자신보다 '조국'을 사랑한 당찬 여성이었는데 '로미오와 쥴리엣'과는 비교할 수 없는 쑨원과 그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나는 국가의 일에 전념하느라 가산을 다스리지 못했다. 내가 남기는 책, 의복, 주택 등 일체는 나의 처에게 주어 이것으로 기념이 되게 하라. 나의 딸은 스스로 장성하여 자립하게 하라. 바라건대 각각 자애하고 또 나의 뜻을 이어갈 것을 부탁한다."

마치며

중국인을 만날 때 그를 존경한다고 하면 상대방의 눈빛이 달라지고, 그의 이름을 딴 도로(중산로)가 약 4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중국과 대만, 양쪽 모두에서 존경받고 있는 유일한 인물 쑨원,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 공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까지 추서받았으니 가히 동아시아 최고의 인물이 아닌지··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오른쪽 가슴에는 국민당을, 왼쪽 가슴에는 공산당을 함께 품었던 넓은 도량의 쑨원,

우리는 과연 언제쯤 이념적 좌우를 다 포용하고 나갈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진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지··

"要立志做大事(요입지주대사), 不要立志當大官(불요입지당대관)"

"뜻을 세워 큰 벼슬을 하려고 하지 말고 큰 일을 하려고 하라."

'큰 일'보다 '큰 벼슬'에만 관심있는 요즈음 지도층 인사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지··

천하는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고 만 천하이며, 군주의 권력은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천하의 공의(公義)를 실현하고 만인의 이익을 위해 주어져야 한다는 '天下爲公 (천하위공)'의 신념 아래 평생을 혁명의 한길에 바친 쑨원,

先天下之憂而憂(선천하지우이우)

後天下之樂而樂(후천하지락이락)

그는 항상 세상 사람이 근심하기 전에 먼저 걱정했으며,

세상 사람이 즐거운 뒤에야 비로소 즐거워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절망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 설 수 있다. 모든 사업은 칠전팔기이다. 중요한 것은 자아를 상실하지 않는 일이다. 절망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취된다."

언행일치, 말과 행동이 같은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

결국 자신의 모든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그의 위대함이 아닌지··

글·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