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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애정비사]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애절한 사랑

서정욱 | 기사입력 2017/09/26 [11:07]

[중국 애정비사]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애절한 사랑

서정욱 | 입력 : 2017/09/26 [11:07]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양심지)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이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次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당나라 때 천재시인 백거이가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長恨歌)'의 일부다.

 

꽃도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게 한(羞花) 절대가인 양귀비와 현종의 이루어질 수 없는 치명적인 사랑에 대해 살펴보자.

 

▲ 王朝的女人 楊貴妃 영화 스틸 컷     © 데일리차이나

 

 

개원의 치(開元之治)

 

"짐이 마르더라도, 천하와 백성들이 살찌면 아무 여한이 없다."

 

어릴 때부터 영명신무(英明神武)했던 현종,

 

그는 증조부 태종과 등극방식이 같았을 뿐아니라, 중국 역사상 똑같은 찬란한 태평성세를 만들었으니 바로 '정관지치'와 '개원지치'죠.

 

그는 즉위 초부터 요숭, 송경, 장구령 같은 현명한 신하들을 잇달아 재상으로 기용하여 선정을 폄으로써 측천무후의 전횡으로 빚어진 폐단을 시정하죠.

 

또한 그는 중앙의 유능한 관리를 지방에 파견하고, 사찰과 승려를 줄이고, 가뭄이 돌자 황궁의 쌀을 배고픈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어진 정치를 행하죠.

 

'해가 뜨면 일하고 해지면 쉰다. 내 밭을 갈아 먹고 내 우물을 파서 먹으니, 임금이 나에게 무엇을 하겠는가? (日出而作 日入而食 耕田而食 鑿井而飮 帝力何有於我)'

 

태평성세의 대명사 요임금 때 어떤 노인이 배(腹)를 두드리며 부른 '격양가'인데, 이처럼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 굳이 임금이 누구인지 알 리가 없이 그냥 자신의 분수에 따라 편안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

 

'개원성세'가 바로 그런 태평성세였죠.

 

태종이 이룩한 '정관지치'에 버금가는 '개원지치'를 이룬 현종,

 

다만 두사람 사이에는 천하의 운명과 후세의 평가를 좌우할 결정적 차이가 있었으니 바로 '여자'죠.

 

태종이 천하제일의 현명한 황후 장손씨를 취했던데 비해, 현종은 불행히도 천륜에 반하는 경국지색의 미인을 취하게 된 것이죠.

 

바로 그의 18번째 아들 수왕 이모의 부인으로 6년간 살던 양옥환이죠.

 

만남

 

연꽃 휘장 속에서 보낸 뜨거운 봄밤
봄밤이 너무 짧아 해가 높이 솟았구나
황제는 이날 이후 조회에도 안나오네
후궁에 미인들은 3천명이나 되었건만
3천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네

금으로 치장한 궁궐에서 화장을 끝내고 기다리는 밤 백옥누각에 잔치 끝나면 피어나는 봄

 

총애하던 무혜비의 죽음으로 외로워하던 현종,

 

어느 날 환관 고력사의 주선으로 그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데··

 

지금의 가녀린 미녀와는 거리가 먼 통통한 몸매에 


아름다운 피부를 가진 풍만하고 농염한(資質豊艶) 몸매, 구름같은 귀밑머리, 꽃 같은 얼굴, 흔들거리는 금장식··

 

결국 현종은 그녀의 눈웃음 한번에 눈이 멀고, 예순을 바라보던 그의 마음에 사랑의 불길이 당겨지죠.

 

두 날개가 합해져야 비로소 날 수 있다는 전설상의 새 '비익조(比翼鳥)'와 다른 뿌리에서 나왔지만 서로 얽혀 자라는 나무 '연리지(連理枝)'처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두 사람,

 

뜨겁다고 모든 사랑이 다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 뜨겁지만 이루어져서는 안 될 사랑도 있는 것,

 

천륜에 반하는 그들의 사랑이야말로 바로 그런 사랑이 아닐지··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빼어난 미인, 한 무제 때 이연년의 다음 시에서 유래하죠.

 

북방에 아름다운 여인 있어(北方有佳人)
세상에 둘도 없이 홀로 섰네(絶世而獨立)
한번 돌아보니 성이 기울고(一顧傾人城)
다시 돌아보니 나라가 기우네(再顧傾人國)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울어지는 것을 어찌 모를까마는(寧不知傾城與傾國)
아름다운 여인은 다시 얻기 어렵네(佳人難再得)

 

두 사람의 만남 이후 당나라는 큰 변화를 맞이하죠.

 

그녀를 낀 환관과 탐관오리가 득세하며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들의 삶은 급속히 몰락해 민심은 흉흉해지죠.

 

그럼에도 현종은 그녀를 위해 누대로 유명한 온천, 화청지에 궁을 짓고 오로지 사랑에만 전념하죠.

 

또한 그녀의 친인척을 관직에 대거 등용하는데, 특히 그녀의 6촌 오빠 양국충은 건달출신의 부도덕한 간신배로 전횡을 일삼아 결국 안사의 난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죠.

 

성군(聖君)과 암군(暗君)의 구별은 흔히 역사의 승자와 패자로 구별되기도 하지만 그는 역사의 패자가 아님에도 사랑에 눈이 멀어 극에서 극으로 떨어지니 참으로 안타깝다. 

 

안사(安史)의 난

 

755년부터 763년까지 약 9년 동안 당나라를 뒤흔든 안록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반란.

 

그녀의 몰락은 그녀가 총애하던 두 남자 양국충과 안록산 사이의 알력에서 시작되죠.

 

안록산은 돌궐족으로 일개 군졸에서 용맹으로 공을 세워 절도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인데 20대의 그녀는 40대의 그를 수양아들로 삼죠.

 

일설에는 두사람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도 하나 이는 오직 그 둘과 하나님만이 안다고 봐야겠죠.

 

아무튼 양국충은 그의 성장에 위협을 느껴 제거하려 했고, 이를 눈치 챈 그는 난을 일으켜 곧바로 수도인 장안까지 쳐들어 오죠.

 

"군대를 거느리고 장안으로 가서 양국충을 섬멸하라는 황제의 밀령이 내렸노라.”

 

중원 일대는 1백여 년 동안 전쟁이 없었는데 갑작스레 전쟁이 터지자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리들마저 황급히 도망치거나 항복하기에 바빴고 이에 반란군은 저항다운 저항 한 번 받지 않고 파죽지세로 내려왔죠.

 

결국 장안은 함락되고 현종은 그녀를 데리고 피난 길에 오르게 되는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듯이 권력도 10년을 갈 수 없는 것, 27세에 귀비가 되어 10년간 통치하던 부패권력도 끝내 막을 내리죠.

 

서쪽으로 성문 백여리를 나오더니
어찌하리오 호위하던 여섯 군대 모두 멈추어서니
아름다운 미녀 굴러 떨어져 말앞에서 죽으니
꽃비녀 땅에 떨어져도 줍는 이 하나도 없고
비취 깃털, 공작 비녀, 옥비녀 마져도
황제는 차마 보지 못해 얼굴을 가리고
돌아보니 피눈물이 흘러내리네

 

그토록 그녀를 사랑했던 현종, 그 또한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외면하며 오로지 피눈물을 흘리는 소극적이고 비겁한 남자일 뿐이었죠.

 

호위하던 병사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내주고 비단천으로 자결하게 만들죠.

 

'미인박명(美人薄命)'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사랑받는 경우는 평생토록, 혹은 사후에 까지 오랫동안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랑받는 경우는 대부분 그 기간이 젊은 한때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것,

 

소동파가 항주에서 우연히 팔십이 넘은 어여쁜 여승을 보고 그녀의 아리따웠을 소녀시절을 회상하며 지은 시에서 유래하는 이 말만큼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 과연 있을지··

 

이후 현종은 아들 숙종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으로 물러나 그녀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그리워하며 6년을 더 살다 78세로 숨을 거두는데 당나라 황제 중 최고령, 최장수 제위기간이죠.

 

마치며

 

연못을 들여다보면 물고기가 넋을 잃고 가라앉았다고 해서 ‘침어(沈魚)’로 불린 월나라의 서시(西施),

 

가야금 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고 떨어진다고 하여 ‘낙안(落雁)’으로 불린 한나라의 왕소군(王昭君),

 

달이 부끄러워 자신을 가릴 정도로 예뻐 ‘폐월(閉月)’로 불린 삼국지의 초선(貂蟬),

 

꽃을 건드리자 꽃이 부끄러워하면서 잎을 말아 올렸다고 해서 ‘수화(羞花)’로 불린 당나라의 양귀비,

 

이른바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여인들인데,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인 것, 역사의 뒤안길에는 언제나 여자가 있었죠.

 

그 동안 역사는 모든 망국의 책임을 경국지색이라는 이름으로 여자들에게만 떠넘겨 왔는데,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결국 황제의 책임이 가장 클 수밖에 없는 것,

 

애꿎은 비련의 여인들에게 결코 망국의 책임을 돌려서는 안되겠죠.

 

백옥 같은 살결위로 은빛 달빛도 숨을 죽이는 동양 미인의 표상 양귀비,

 

늙은 시아버지의 애첩이라는 도덕적으로 감내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뛰어난 미모 하나로 그 큰 대륙의 땅을 뒤흔들었던 양귀비,

 

그녀야말로 나라를 망친 경국지색이 아니라 남성들의 추악한 애정다툼과 권력다툼 속에 짓밟힌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아닐지··

 

그녀의 미모에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떨굴 것이 아니라 그녀를 매도한 찌질이 남성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떨궈야 하지 않을지··

 

왕소군의 옥같이 고운 몸 오랑캐 땅의 흙이 되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 마외 언덕의 티끌 되었네
세상만물의 이치가 모두 이와 같으니
오늘밤 그대 치마끈 푸는 것을 아끼지 마오

 

위 장한가 중 '인생무상'을 노래한 부분인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야 무상하지만,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한줄기 사랑만은 영원한 것이 아닌지··

 

글·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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