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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애정비사]항우(項羽)와 우희(虞姬)의 슬픈 운명적 사랑

서정욱 | 기사입력 2017/09/08 [17:13]

[중국 애정비사]항우(項羽)와 우희(虞姬)의 슬픈 운명적 사랑

서정욱 | 입력 : 2017/09/08 [17:13]

鴻門玉斗紛如雪(홍문옥두분여설) 
홍문에 범증의 옥술잔 깨어져 눈처럼 흩날리고

十萬降兵夜流血(십만항병야유혈) 
항복한 진나라 십만 병사들의 피 밤새 흘렀네

咸陽宮殿三月紅(함양궁전삼월홍) 
함양궁의 불길은 석 달이나 붉게 타올랐고

霸業已隨煙盡滅(패업이수연진멸) 
항왕(항우)의 패업 꿈은 연기되어 사라졌네

 

송나라 증공의 '우미인초(虞美人草)'란 시인데··

 

패왕별희(覇王別姬), 항우(項羽)와 우희(虞姬)의 슬픈 운명적 사랑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 영화 패왕별희(1993년작)     © 데일리차이나

 

우희

 

중국 역사상 가장 남자다운 남자와, 여자다운 여자의 한 쌍으로 꼽히는 항우와 우희,

 

그녀는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등과 함께 경국지색의 미인으로 꼽히지만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녀의 흔적은 미미하다.

 

“항왕에게는 '우'라는 이름의 미인(美人)이 있었는데, 총애하여 항상 데리고 다녔다. 항우가 “우야, 우야” 하며 '해하가'를 부르자, 그녀도 따라 불렀다."

 

'사기'는 '항우본기'의 마지막에 그녀를 살짝 언급할 뿐 뒤로는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기록이 없다.

 

다만 당나라 때의 장수절은 '사기'의 3대 주석서 가운데 하나인 '사기정의(史記正義)'를 펴내면서 지금은 사라진 '초한춘추(楚漢春秋)'를 인용해 그녀가 죽기 직전에 화답했다는 노래와 그녀에 대한 약간의 기록을 남겼는데··

 

그녀는 제나라 사람으로 항우의 부하가 된 우자기의 누이인데, 우연히 항우의 눈에 들어 열렬한 사랑을 받은 끝에 '황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인’이라는 칭호는 고대 중국 황실에서 후궁의 하나로 '귀인(貴人)'보다 아래인 여성에게 주어졌으며, “총애하여 항상 데리고 다녔다”는 사기의 기록을 볼 때 귀족의 자제인 항우에게는 일찌감치 정혼한 정부인이 있었고, 그녀는 후에 맞이한 애첩으로 봐야겠다.

 

홍문지연(鴻門之宴)과 사면초가(四面楚歌)

 

‘항장검무의재패공(項莊劍舞意在沛公)’, ‘항장이 칼춤을 추는 의도는 패공(유방)을 해치려는 데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술자리이자 실패한 술자리인 홍문지연은 이후 6년간의 초한(楚漢) 전쟁의 서막을 열어놓는다.

 

흥문의 연회는 천하를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중요한 자리였는데 유방은 항우에게 무릎을 꿇음으로 해서 위기에서 벗어나 후일 천하를 차지하는 기회를 만들었고, 반면 항우는 범증의 심증을 이해하지 못한 아둔함으로 손에 들어온 천하를 놓치고 만다.

 

"내가 군사를 일으킨 지 8년 동안 70여 차례 싸우면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모든 싸움에 이겨서 천하를 얻었으나 여기서 곤경에 빠졌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버려서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것은 아니다."

 

'역발산 기개세'의 빼어난 무장이었지만 자신의 힘만을 믿고 지나친 자부심과 교만으로 끝내 역사의 패자가 된 불운의 영웅 항우,

 

그는 한신, 팽월, 영포 등이 이끄는 유방의 군대에 쫓겨 지금의 안휘성 영벽현 동남쪽의 12미터 높이의 절벽 아래인 해하(垓下)에 이른다.

 

궁지에 몰린 그는 군사는 적고 식량도 다한 까닭에 이내 영루 안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걸어 잠갔는데, 이때 한신은 그 유명한 '십면매복(十面埋伏)'을 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데··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심리 작전이 멋지게 맞아떨어진 것.

 

"한이 이미 초를 모두 얻었단 말인가, 초나라 사람이 어찌 이리 많은고? (漢皆已得楚乎 是何楚人之多乎)

그는 크게 상심한 나머지 이같이 탄식하며 총애하는 애첩 우희에게 시 한 수를 읊는다.

 

해하가(垓下歌)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지만

時不利兮騶不逝(시불리혜추불서)
때는 불리하고 오추마도 달리지 않는구나

騶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내 어찌하랴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야, 우야. 너를 장차 어쩌란 말인가!

 

천하의 영웅 항우가 자신이 결국 패배했음을 깨달았을 때 마지막으로 외친 이름은 비운의 명장이자 할아버지 항연도, 숙부이자 주군 항량도, 모사이자 아부(亞父)로 깍듯이 예우했던 범증도 아니었다.

 

“우야, 우야. 너를 장차 어쩌란 말인가!”

 

이를 두고 후대의 일부 유학자들은 그가 마지막까지 '여자 타령'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 이는 결국 그의 인간적 진솔함과 순수한 사랑을 드러내는 근거로 봐야겠다.

 

늘 최일선에서 앞장서 돌격하며 부하들의 투지를 불태웠고, 최고사령관의 몸으로 직접 벽돌을 나르거나, 다친 병사를 간호하며 눈물을 흘리는 등의 인간적 면모를 통해 병사들의 신뢰와 충성을 쌓아온 항우,

 

그는 '전쟁'뿐만 아니라 '사랑'에 있어서도 그 누구보다 진솔하고 순수했던 것이다.

 

▲ 항우_바이두     © 데일리차이나

 

화해하가(和垓下歌)

 

오는 잔이 있으면 가는 잔이 있듯이, 오는 시가 있으면 가는 시도 있는 법, 그의 애절한 노래에 그녀는 다음의 노래로 답한다.

 

漢兵己略地(한병기략지) 
한나라 병졸들 이미 우리 땅을 모두 차지해

四面楚歌聲(사면초가성) 
사방에 들리느니 초나라 노랫소리 뿐이네

大王義氣盡(대왕의기진) 
대왕의 드높던 뜻과 기개마져 다하였으니

賤妾何聊生(천첩하료생) 
하찮은 이 몸 어찌 살기를 바랄 수 있으리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짐이 된다는 것을 느껴 그의 검을 뽑아 들고 목을 베어 자결한다.

 

이후 그녀가 흘린 피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이를 '우미인초(개양귀비)'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첫머리에 있는 증공의 시를 계속 감상해 본다.

 

香魂夜逐劍光飛(향혼야축검광비) 
우미인의 영혼이 칼 빛을 따라 하늘로 날아가니

靑血化爲原上草(청혈화위원상초) 
푸른 피가 변하여 들판의 풀이 되었네

芳心寂寞寄寒枝(방심적막기한지) 
향기로운 마음 쓸쓸히 차가운 가지에 머물러 있으니

舊曲聞來似斂眉(구곡문래사렴미) 
옛 가락 들려오면 우미인 눈썹을 찌푸리는 듯하네

哀怨徘徊愁不語(애원배회수불어) 
슬픔과 원망 속에 헤매며 근심으로 말도 못하니

恰如初聽楚歌時(흡여초청초가시) 
마치 그 옛날 초나라 노래를 듣는 듯하여라

 

이후 우미인초의 앞에서 '해하가'를 들려주면 이 꽃은 바람이 없어도 사시나무 떨듯 떤다고 하는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뒷 이야기

 

이후 그는 휘하 기병 800여 명과 함께 포위를 뚫고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하여 안휘성 화현 동북쪽 오강(烏江) 쪽으로 갔는데 이때 배를 놓고 기다리던 정장(亭長)이 그에게 말한다.

 

“강동은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으로 1,000리나 되고 수십만 명의 무리가 있으니 족히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은 속히 강을 건너십시오. 지금은 신만이 배를 갖고 있어 한나라 군사들이 이를지라도 결코 도강할 수 없습니다.”

 

이때 그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는데 내가 강을 건너 무엇을 하겠는가? 게다가 나는 강동의 자제 8,000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진격했다가 지금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왕으로 맞아준들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며 끝내 자결을 한다.

 

천년의 세월이 지나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이 오강을 지날 때 그를 떠올리며 아쉬움에 시 한 수를 짓는다.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이니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수치를 참고 견디는 것이 진정한 대장부라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알 수 없었으리

 

천명과 천시가 따라주지 않아 끝내 패배했지만 천명에 순응하여 자신의 최후를 장엄하게 마쳐 새로운 영웅으로 거듭난 항우,

 

'어찌 한 여인이 두 지아비를 섬기며, 천하통일을 꿈꾸는 황제께서 일개 계집의 안위를 맘에 두느냐'며 더없이 초라한 항우를 끝까지 지켜주고 함께 삶을 마감한 우희,

 

"운명적 사랑에 있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증공의 시의 끝부분으로 마칠까 한다.

 

滔滔逝水流今古(도도서수류금고)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흐르고

漢楚興亡兩丘土(한초흥망양구토) 
한나라, 초나라 모두 흙 둔덕일 뿐

當年遺事久成空(당년유사구성공) 
당시의 지난 일 모두 공허하게 된지 오래니

慷慨樽前爲誰舞(강개준전위수무) 
술통을 앞에 두고 강개하노니, 누굴 위해 춤을 추는가

역사도, 인생도, 사랑도 모두 무상(無常)한 것이 아닐지··

 

 

글·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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