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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애정비사]최고 시인 두목과 장호호의 덧없는 사랑

서정욱 | 기사입력 2017/10/09 [13:59]

[중국 애정비사]최고 시인 두목과 장호호의 덧없는 사랑

서정욱 | 입력 : 2017/10/09 [13:59]

"젊어 사랑을 모르면 가슴이 없고, 늙어서도 사랑에 집착하면 머리가 없다."

 

만당(晩唐) 시대 최고의 시인 두목(杜牧)과 13세 동기(童妓) 장호호(張好好)의 한 조각 뜬구름 같은 덧없는 사랑이야기를 한 토막 소개한다.


만남

 

▲ 杜牧_baidu     © 데일리차이나

 


만당(晩唐) 시기의 대표적 시인으로 시성(詩聖) 두보에 견주어 '소두(小杜)'라 칭해지는 두목,

 

풍류시, 역사시, 풍자시, 요염하고 미려하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시 등으로 만당 시인 중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 받는 두목,

 

그는 호방하고 낭만적인 성격으로 많은 염문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가 회남절도추관(淮南節度追官)으로 양주에 있을 때였다.

 

소동파의 시 '박명가인(薄命佳人)'의 무대였던 양주는 춘추전국시대 때 초나라의 수도이기도 했는데 예로부터 항주, 소주와 함께 미인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 이유는 보통 세가지를 드는데 물 많은 수향(水鄕)에다 물자 풍부하여 돈이 많고, 날씨가 좋아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청루(靑樓)라는 술집인데 당시 그녀는 13세의 어린 동기였다.


娉娉嫋嫋十三餘(빙빙뇨뇨십삼여)
아리땁고 가련한 열서너 살 아가씨

豆蔲梢頭二月初(두구초두이월초)
이월 초순에 가지 뻗은 두구화구나

春風十里揚州路(춘풍십리양주로)
양주길 십리에 봄바람 부는데

卷上珠簾總不如(권상주렴총부여)
주렴을 걷고 둘러보아도 너만 못해라

 

▲ 웨이보(一切无原因) 캡쳐     © 데일리차이나

 

화려한 꽃 봉우리가 특징으로 '함태화(含胎花, 아이를 배고 싶은 욕망의 꽃)'라고도 불리며, 대개 어린 소녀의 아름다움을 비유하는 꽃 두구화,

 

둘의 사랑은 이월에 핀 두구화처럼 뜨거웠다.

 

그러나 천년 만년 변치 말자는 한밤의 굳은 맹세도 깨고 나면 모두 한바탕 덧없는 봄꿈(一場春夢)에 불과한 것,

 

둘의 사랑도 결코 영원하진 않았다.


이별


성격이 강직하고 호탕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했지만 늘 만족하지 못하고 그 심정을 시로 나타내면서, 揚州(양주)와 秦州(진주) 등 당시의 유명한 환락가를 떠돌아다녔던 두목,

 

그는 대화(大和) 9년(835) 감찰어사로 장안으로 떠나게 된다.

 

이때 그는 그녀에게 작별을 슬퍼하며 시 한 수를 적어 준다.


多情却似總無情(다정각사총무정)
정이 지나치면 도리어 무정함과 같다더니

唯覺尊前笑不成(유각존준소불성)
술잔을 들어도 취하지 않고 웃을 수도 없구나

蠟燭有心還惜別(납촉유심환석별)
촛불도 정 있는지 이별을 아쉬워해

替人垂淚到天明(체인수루도천명)
밤 새도록 나 대신에 눈물 흘리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듯이, 다정(多情)도 지나치면 무정(無情)이 되는 것,

 

이 시를 볼 때마다 떠나는 그의 눈물이 밤새 흐른 촛농이라면, 떠나 보내는 어린 그녀의 눈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견회(遣懷)


나라가 기울어 가는 경국(傾國)의 안타까움 속에 자신의 정치적 뜻을 펼 수 없게 되자 한때 주색과 풍류에 빠져들어 ‘風流才子(풍류재자)’로 불린 두목,

 

가는 허리에 몸이 제비처럼 가벼워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정도로 아리따웠던 두구화 장호호,

 

이후 둘의 러브스토리는 아무리 기록을 뒤져봐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필자의 능력부족이 아니라 두구초두(豆蔲梢頭)처럼 뜨거웠던 둘의 사랑도 결국 한 조각 뜬구름 같은 덧없는 사랑으로 끝났다고 봐야겠다.

 

다만 두목이 젊은 시절의 방탕한 생활을 자책하며 쓴 시가 있는데 바로 '견회(遣懷)'라는 시다.

 

`견회(遣懷)`는 '회포를 풀다' 또는 `시름을 쫓다`는 뜻으로 결국 이 시는 그가 양주 화류계에서 10년 세월을 헛되이 보낸 일이 일장춘몽임을 깨닫고 쓴 것이다.


落魄江湖載酒行(낙백강호재주행)       
실의에 빠져 술병차고 강호에서 노닐 때

楚腰纖細掌中輕(초요섬세장중경)       
초나라의 미인들 허리 가늘어 손바닥에 가벼웠네

十年一覺揚州夢(십년일각양주몽)      
양주에서 놀아난 십년 꿈 깬 지금

贏得靑樓薄倖名(영득청루박행명)       
청루의 탕아라는 이름만 남았구나


젊어 사랑을 모르면 가슴이 없고, 늙어서도 사랑에 집착하면 머리가 없는 것,

 

그는 비록 경국(傾國)의 안타까움속에 희망을 잃고 따뜻한 가슴으로 술과 여인에게 미혹되어 '청루의 탕아'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차가운 머리로 돌아와 후세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후 둘의 신분을 초월한 애틋한 사랑은 후대까지 이어져 원나라 때 교길(喬吉)은 '두목지시주양주몽(杜牧之詩酒揚州夢)'이라는 잡극을 짓는다.

 

"시인은 기방의 부평초 같은 무정함을 원망하기보다는 도리어 자신의 박정함을 탄식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의 고뇌들을 참회하고 있는데, 이 또한 시인의 충직하고 도타운 인간미를 보여준다.”

 

청말의 학자 유계운의 평가인데, 결국 진정한 사랑이란 항상 '상대탓'이 아니라 '내탓'이라는 자책이 아닐지··


글·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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