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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열전]병성(兵聖)·무성(武聖), 손무(孫武)

서정욱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2/10 [14:13]

[역사인물열전]병성(兵聖)·무성(武聖), 손무(孫武)

서정욱 변호사 | 입력 : 2018/02/10 [14:13]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상대를 모르고 나만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 상대도 나도 다 모르면 싸웠다 하면 진다."

 

'손자병법'이라는 병가(兵家)의 바이블을 저술하여 병가의 성인, 즉 '병성(兵聖)' 또는 '무성(武聖)'으로 추앙 받는 손무에 대해 살펴보자.

 

▲ 孙武_baidu image     © 데일리차이나

 

오(吳)나라의 군사(軍師)가 되기까지

 

그에 대한 기록으로는 사마천의 사기 외에 오나라와 월나라의 흥망사를 기술한 오월춘추(吳越春秋), 그의 선조와 후손들에 대하여 기록한 신당서(新唐書) 등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그는 춘추시대 말기인 BC 544년 경 제나라 낙안(樂安, 산동성 혜민현)에서 당시로서는 신흥 지주 계급인 군사 전문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 진완(陳完)은 원래 진(陳)나라 공자로 내란 통에 제나라로 도망와 성을 전(田)으로 바꾸었는데, 그의 할아버지 전서(田書)가 거(莒)를 공격하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제 경공이 낙안을 근거지로 주고 동시에 '손(孫)'이란 성까지 하사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병법에 큰 관심을 보였고 검술도 잘 했는데 BC 532년, 제나라에 전·포·난·고, 소위 4성의 난이 터지면서 이때 그는 가족을 따라 오(吳)나라로 이주하게 된다.

 

이후 약 20년 동안 산간 벽지에 숨어 지내며 병법을 깊이 연구하여 '손자병법'을 완성한 그는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왕 합려를 만나게 되는데··

 

초(礎)나라 정벌

 

“그대의 병서를 읽은즉 그 내용의 신묘함이 탄복할 만하니, 우선 과인의 궁녀들을 훈련시켜 단련해 보도록 하오. 가능하겠소?”

 

합려는 그의 용병술을 시험하고자 궁녀 180명을 내 주며 훈련을 명한다.

 

이때 그는 합려가 가장 아끼는 궁녀 둘을 대장으로 세워 훈련을 시키는데 궁녀들은 훈련에 따르지 않고 장난처럼 여긴다.

 

“군령이 불분명하고 호령이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잘못이나, 군령이 이미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구령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직속 대장의 잘못이다”

 

그가 좌우 양쪽의 대장을 참수하려 하자 대(臺) 위에서 보고 있던 오왕은 크게 놀라 급히 내려와 “과인은 이미 장군이 용병에 능하다는 것을 알았소. 그 두 명의 희첩이 없으면 과인은 음식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모를 것이니 제발 죽이지 말기를 바라오.”라고 부탁(?)한다.

 

“저는 이미 임금의 명을 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중에 있을 때에는 임금의 명이라도 받들지 않을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두 사람을 참수해 본보기를 보였는데 그 다음은 명약관화, 즉 불을 보듯 뻔하니 생략.

 

BC 506년 드디어 그는 오자서와 함께 초나라 원정을 떠나는데, 천하의 명장 ‘오자서’와 병법의 대가 ‘손무’, 결국 오군은 귀신도 곡할 신묘한 전략으로 연전연승하며 초의 수도 영(郢)을 함락시킨다.

 

현실을 무시하고 이론을 앞세우는 샌님도, 현실을 앞세우고 이론을 무시하는 무모한 사람도 아니었던 손무,

흔히 스타선수 중 훌륭한 지도자가 드물 정도로 이론과 실천은 별개로 취급되는데, 그는 이론이야말로 최강의 실천임을 몸소 증명했다.

 

공성신퇴(功成身退)
 
꽃 피고 열매 맺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 (노자)

 

그는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개선하지만 어떠한 관직도 마다한 채 물러나 칩거하죠.

 

궁리 끝에 오왕은 오자서를 내세워 그를 설득하는데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이 보게, 자연의 법칙을 아는가?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오기 마련이라네. 오왕께서는 나라의 강성함을 믿고 도처에서 전쟁을 벌여 공을 세우고 있는 중이지만, 허나, 이로 인하여 마음에 교만함이 생기고 우월심에 빠질 것이라네. 공을 세운 후에 몸을 사리지 않으면 결국은 끝없는 후환이 올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야지. 지금 나는 자네도 은거하라고 권해주고 싶다네."

 

그러나 끝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오자서는 결국 '토사구팽'되고 그는 홀연히 칩거에 들어가니, 그의 마지막을 아는 이가 없다고 한다.

 

불은 활활 위로 위로 타올라 결국에는 재만 남지만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 결국에는 큰 바다를 이루는 것,

 

그의 기록을 볼 때마다 정말 병법 못지 않게 처세술에 감동받게 된다.

 

손자병법
 

▲ 손무_위키피디아     © 데일리차이나


"전쟁은 국가의 중대사이다. 전쟁은 죽고 사는 것이 판가름 나는 곳이고, 보존하고 멸망하는 길이다. 따라서 깊게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물론 세계 군사학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이 책은 총 13편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사상은 ‘경제주의적 전쟁론’, ‘과학적 전쟁론’, ‘정치적 전쟁론’, ‘백성 중심의 전쟁론’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다."

 

그는 칼로 싸우는 것보다는 정치를 올바르게 하여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이라 강조하고, 부득이 전쟁을 할 경우 속전속결을 주장했다.

 

시대를 초월하여 단지 병서로써만이 아니라 일반인의 처세학으로도 널리 읽히고 있는 손자병법,

 

필자 또한 다양한 버전의 손자병법을 읽어봤지만 정말 읽을 때마다 같은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결국 고대는 침략과 정복의 역사로서 전쟁에서의 승패에 따라 한 국가의 운명과 세계사의 방향이 결정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약육강식의 시대에 전쟁의 전략과 전술, 병법과 용병술의 새로운 전환을 가져온 그의 병법이 역사에 끼친 영향은 결코 공자나 노자에 못지 않을 듯··

 

마치며

 

"천하의 이익을 독점하는 자는 천하를 잃고, 천하의 이익을 나누는 자는 천하를 얻는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긴 뒤에 싸움을 찾고, 패하는 군대는 먼저 싸운 뒤에 승리를 구한다."

 

"한 나라의 군주된 자가 한 때의 노여움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전군의 장수된 자는 잠깐의 분노 때문에 전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노여움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기쁨으로 바뀔 수 있고, 분노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하면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침략적이고 무모한 전쟁을 반대했는데, 오늘날 그의 모습은 '지피지기(知彼知己)'를 통해 '백전백승'하는 '전쟁신(神)'의 이미지로만 그려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Der Krieg ist eine bloße Fortsetzung der Politik mit anderen Mitteln."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독일의 천재 전략가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전쟁은 어느 시기,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필요악인 것,

 

무엇보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어느덧 60여 년이 지나감에도 아직도 완전한 종전이 아니라 어정쩡한 휴전상태로 남북이 휴전선 철책을 사이에 두고 강파른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준전시상태에서,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킨다'는 그의 사상은 반드시 다시 한번 음미해볼 만 하지 않을지··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고(居安思危), 그러면 대비를 하게 되며(思則有備), 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지게 되는 것(有備則無患)"

 

과연 '유비(有備)'가 없이 '무환(無患)'이 가능할지··

 

글·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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