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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열전]중국 근대화의 아버지, 루쉰(魯迅)

서정욱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3/22 [13:53]

[역사인물열전]중국 근대화의 아버지, 루쉰(魯迅)

서정욱 변호사 | 입력 : 2018/03/22 [13:53]

”중국인의 심성은 항상 타협과 절충을 좋아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령 이 방이 너무 어두워서 창문을 하나 내야겠다고 하면 모두 반대한다. 그러나 아예 지붕을 뜯어버리자고 하면 그들은 곧 창문을 내자는 주장에 타협한다.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언제나 온건한 개혁마저도 하려 들지 않는다. 백화문(구어체 문장)이 쉽게 보급될 수 있었던 것도 중국 문자를 폐지하고 로마자를 사용하자는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루쉰(魯迅)이 '백화문'을 사용한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를 내면서 구시대적 악습에 집착하는 당대 사회를 비판한 글이다.


'아Q정전', '광인일기' 등을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출발을 알리고,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루쉰에 대해 살펴보자.

 

▲ 루쉰_위키피디아     © 데일리차이나


 

작가가 되기 전까지

 

1881년 중국 저장(浙江)성 사오싱(紹興)의 몰락한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난 루쉰,

 

그의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이고 '루쉰'은 필명인데 '느림(魯)과 빠름(迅)'이란 뜻이다.

 

그가 속도의 문제를 이름으로 삼은 것은, 사회변화의 문제는 옳고 그름 만큼이나 속도(완급)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 아니었을지··

 

혁명에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세상을 모색했던 루쉰, 지금은 느림(魯)의 시절이니 조금 쉬어가자, 그러면 다시 빠름(迅)의 시절이 오지 않겠는가며 그의 필명을 짖지는 않았을지··

 

아무튼 어려서 전통 교육을 받고 한때 과거에도 응시한 그는 가정 형편을 고려해 학비가 무료인 난징(南京)의 수사학당(해군학교)에 진학하는데,

 

이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센다이 의학교에 입학하지만 강의 도중에 중국인 처형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가 상영되자, 이에 분노한 나머지 자퇴하고 '몸'이 아니라 '영혼'을 고치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광인일기(狂人日記)

 

피해망상광의 일기 형식을 빌려 중국의 낡은 사회, 그 중에서도 가족제도와 그것을 지탱하는 유교도덕의 위선과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는 작품.

 

어느 날 한 친구가 찾아와 잡지에 게재할 글을 부탁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령 창문이 하나도 없고 무너트리기 어려운 무쇠로 지은 방이 있다고 하세. 만일 그 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이 들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막혀 죽을 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죽는다면 죽음의 슬픔을 느끼지는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소리를 쳐서 잠이 깊이 들지 않은 몇몇 사람을 깨워, 그 불행한 사람들에게 임종의 괴로움을 맛보게 한다면 오히려 더 미안하지 않은가?”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반문한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일어난 이상, 이 무쇠 방을 무너트릴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잖은가.”

 

이에 그는 결국 1918년 '신청년'에 글 한 편을 싣는데 바로 첫 번째 단편소설 '광인일기'다.

 

흔히 '중국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5·4 신문화운동의 대표작으로 중국 근대문학의 기념비적인 이 작품은 워낙 난해하여 제 머리로는 미치광이의 시선 그 이면에 숨은 작가의 의도를 단박에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읽매(읽을수록 매력)인 듯··

 

아Q정전(阿Q正傳)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두세 차례 힘껏 후려쳤다. 화끈거리고 아팠다. 실컷 때리고 나자 그때서야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때린 것은 자기고 맞은 사람은 남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자기가 남을 때린 것으로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아직 화끈거리고 아팠지만 그는 승리감에 도취해 자리에 누웠다.”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리 속에서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주인공 아Q의 정신구조를 희화화함으로써 중국 구사회의 병근(病根)을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는 이 작품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일 터 생략.

 

"아Q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우리는 더 이상 시대의 유해(遺骸)에 연연하지 말고 아Q의 시신을 그의 정신과 함께 매장해 버려야 한다."

 

이는 결국 중국 민중들이 아Q같은 무지몽매한 상태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애절한 호소가 아닐지··

쉬광핑(許廣平)

 

1920년 그는 베이징 여자사범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는데, 반동 성향의 학교 이사진이 개혁 성향의 학생 상당수를 퇴학시킴으로써 학내 투쟁이 지속되고 학생편에 가담한 그 또한 결국 파면된다.

 

곧이어 반정부 지식인에 대한 수배령이 내려지자 그는 여제자인 쉬광핑(許廣平)과 함께 베이징을 떠나 도피 생활에 들어가는데, 이후 둘은 17년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지식인은 많아지는데 세상은 왜 나빠질까요?"

 

중국 사회의 불의에 대한 해법을 청하는 연인의 편지에 그는 “쓰디쓴 현실을 위로해줄 설탕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백지 답안지를 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두 가지 테마 '갈림길'과 '막다른 길'로 연인을 설득하는데, ‘갈림길’에선 포기 대신 휴식을, ‘막다른 길’에선 통곡 대신 ‘호랑이도 한번 물어보는’ 근성을 가지라는 것이다.

 

둘이 10여 년 이상 주고 받은 연서(?)는 책으로도 출판되어 있는데 사랑해요 어쩌구저쩌구 하는 일반적인 러브레터(love letter)와는 사뭇 다르니 섣불리 접근말길··

 

▲ 루쉰(위키피디아)     © 데일리차이나


 

마치며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고향)

 

잉크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진실을 덮을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평생을 아무도 밟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어간 루쉰,

 

중국의 어두운 과거를 예리한 필치로 신랄하게 풍자함으로써 살아 생전 불량 학자, 타락 문인, 위선자, 반동 분자, 봉건 유물, 독설가, 변절자, 돈키호테, 잡문장이, 매판, 허무주의자 등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았던 루쉰,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불꽃처럼 살다가 1936년 56세로 상하이에서 죽는데, 그의 장례는 유언과는 반대로 수천 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역사상 최초로 '민중장'으로 치러졌고 '민족혼(民族魂)'이라 쓰인 하얀 천에 감싸진 그의 시신은 만국공동묘지에 묻힌다.

 
‘죽은 책을 읽지는’(讀死書) 말아야 하며, 잘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죽어라 책만 읽지도’(死讀書) 말아야 하며,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책을 읽다가 죽어서도’(讀書死) 안 될 것이며 반드시 건강에 주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잠시 동안이라도 중국 책을 적게 읽어야 합니다. 그래도 진정 읽어야 한다면 이 한 가지만은 염두에 두십시오. 즉 그 내용을 명확히 변별하고 비판하여 찌꺼기는 버리되 정수를 취해야 합니다."

 

글·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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