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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열전]조조 무덤 확인…난세의 간웅인가? 희대의 영웅인가?

서정욱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3/26 [16:55]

[역사인물열전]조조 무덤 확인…난세의 간웅인가? 희대의 영웅인가?

서정욱 변호사 | 입력 : 2018/03/26 [16:55]

26일 베이징청년보에 따르면 허난성 문화재고고연구원은 허난성 안양현 안펑(安豊)향 시가오쉐(西高穴)촌에 위치한 동한(東漢)시대 무덤군에서 삼국지 위나라의 시조인 조조(曹操 155∼220)와 조조 부인 2명의 무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묘원 안에서는 모두 남성 1명, 여성 2명 등 3구의 유해가 발견됐는데 이중 남성 유해는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60세 전후의 나이에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무덤 구조와 소장품, 역사 기록 등을 분석해 이 남성이 조조라고 결론을 내렸다. 

 

삼국지 위서에 조조의 정실부인 변씨가 70세 전후에 숨진 뒤 조조 묘에 합장됐다는 기록에 따라 여성 노인 유해는 변씨인 것으로, 젊은 여성 유해는 일찍 숨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첫째 부인 류씨인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조조 무덤이 맞다는 중국 당국의 결론에도 진위 논란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조조는 누구인가? 난세의 간웅(奸雄)인가? 희대의 영웅(英雄)인가?

 

東臨碣石 以觀滄海 (동림갈석 이관창해)
동쪽의 갈석산에서 푸른 바다 바라보니

水何澹澹 山島竦峙 (수하담담 산도송치)
바다는 맑디 맑고 섬들엔 산들이 우뚝 솟아 있네

樹木叢生 百草豐茂 (수목총생 백초풍무)
수목은 빽빽이 자라고 온갖 풀 우거졌는데

秋風蕭瑟 洪波涌起 (추풍소슬 홍파용기)
가을 바람 소슬하고 거센 파도 용솟음치네

日月之行 若出其中 (일월지행 약출기중)
해와 달 움직이며 그 가운데 솟는 듯

星漢燦爛 若出其里 (성한찬란 약출기리)
은하수가 눈부시게 그 속에서 솟는 듯

幸甚至哉 歌以詠志 (행심지재 가이영지)
이 얼마나 기쁜가! 이 마음 노래하노라

 

조조가 북방의 오환(烏丸)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갈석산에 올라 읊은 '관창해(觀滄海)'라는 시다.


난세의 간웅(奸雄)인가? 희대의 영웅(英雄)인가? 지금까지도 끝없는 논쟁이 되고 있는 조조(曹操)에 대해 살펴보자.

 



 

治世之能臣(치세지능신) 亂世之姦雄(난세지간웅)

 

'평화로울 때는 유능한 신하, 난세에는 간교한 영웅.

 

유비, 손권 등 걸출한 영웅들이 각축하던 난세에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판세를 읽는 탁월한 능력으로 천하를 품어 위(魏) 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은 조조.

 

군사, 학문, 무예 모두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시문, 그림, 노래에도 뛰어났고, 특히 용인술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조조.

 

역사상 '이미지'와 역사상 '진상'이 같지 않다는 점을 십분 감안해도 그의 진상을 알기는 참으로 어렵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 중 그만큼 성격이 복잡하고, 이미지가 다양하며,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도 드문데··

 

그는 누구보다 간사하고 교활하였지만 때로는 솔직하고 진실하였으며, 큰 아량을 지녔지만 의심이 많았다.

 

또한 그는 대인과 소인의 풍모를 동시에 지녔으며, 영웅의 기개와 아녀자의 감정을 동시에 가졌다.

 

그는 후한 환제 때인 155년 초국 패현에서 환관 조등의 양자인 조숭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본성은 ‘하후’다.

 

내시로서는 유일하게 중국의 황제 명단에 포함되는 영광을 누린 조등은 소위 나라를 망친 열명의 환관을 뜻하는 '십상시(十常侍)'의 정신적 지주였는데 이는 평생 그의 콤플렉스가 된다.

 

여백사

 

寧交我負天下人(영교아부천하인)
休交天下人負我(휴교천하인부아)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날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창망히 도피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을 구해준 진궁과 함께 부친의 친구인 여백사의 집에 묵게 된다.

 

마침 집안에 술이 떨어진 여백사는 술을 구하러 갔는데, 집에 남은 두 사람은 홀연 집 뒤쪽에서 흘러나오는 칼 가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들을 해치려는 것으로 오판하고 여백사의 여덟 식구를 모조리 죽여 버린다.

 

그러나 부엌에서 돼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을 알게 되는데··

 

家狗向裏吠(가구향리폐), 즉 집에서 기르는 개가 집 안 쪽을 향해 짖듯이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급히 집을 나와 달아나던 두 사람은 때마침 술을 구해 오던 여백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증거인멸을 위해 여백사마저 죽여 버린다.

 

이에 진궁이 크게 놀라 “알면서도 고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엄청난 불의요!”라고 질책하자 그는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으리라!” 하고 답하는데··

 

의심 많고, 잔인하며, 악독한 그의 이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이야기의 진실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진실이라 하더라도 저는 잔인함보다는 "명성에 연연하다 현실의 재앙을 입을 수는 없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헛된 이름을 중시하지 않았던 그의 철저함으로 보고 싶다.

 

군주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것, (마키아벨리)

 

결국 진정한 영웅이라면 자신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도의에 어긋난 악행을 저지르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때, 오명이 남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겠다.

 

관도대전(官渡大戰, 200년)

 

"8년 전 원소가 30만일 때 나는 20만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고 봤고, 3년 전 원소가 50만일 때 나는 10만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원소가 70만임에 나는 7만으로 충분히 그를 이길 수 있다고 본다."

 

10여 배의 병력차이에도 불구하고 천재적 전략과 신출귀몰한 용병술로 일궈낸 완벽한 승리 관도대전,

 

그와 원소가 벌인 이 전투는 적벽대전, 이릉대전과 함께 시대의 흐름을 결정지은 중요한 전투다.

 

4대에 걸쳐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른 명문 귀족으로 동탁 토벌군의 맹주였던 원소, 거세된 남자로 천하의 비난을 한몸에 받던 환관의 후예 조조.

 

둘의 전투는 중과부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천하의 평판에서도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이 전투로 하북지방을 점령하고 위용을 떨치던 원소는 역사 속에서 쓸쓸히 사라지고, 그는 중원의 패자로 우뚝 서게 된다.

 

한편 이때 몰수한 전리품 중에서 원소와 내통하고 있던 그의 부하의 편지가 무더기로 나왔는데··

 

“원소의 대군을 상대로 해서 나 자신조차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겠는가? ”

 

그는 결국 편지를 읽지 않고 모두 소각해 버렸는데 이와 같은 포용력이 바로 그의 승리의 결정적 원인이다.

 

더 높기를 싫어하지 않는 산처럼, 더 깊기를 싫어하지 않는 바다처럼 끊임없이 인재의 욕심에 탐닉했던 조조,

천하의 인재가 모이는 곳에 천하의 인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겠다.

 

治平尙德行 有事賞功能 (치평상덕행 유사상공능)

"태평성세에는 덕성을 봐야 하지만, 난세에는 재능이 우선한다."

 

특히 그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능력 제일주의로 사람을 뽑았을 뿐, 그 사람의 청빈함이나 덕성 등은 전혀 보지 않았는데 이는 오늘날 '능력'보다 '신상털기'로 일관하고 있는 청문회에도 참고해야 하지 않을지··

 

적벽대전(赤壁大戰, 208년)

 


 

트로이 전쟁, 십자군 전쟁과 함께 ‘세계 3대 전쟁’으로 꼽히는 적벽대전,

 

천하통일을 위해 대륙을 피로 물들여가던 그는 60만(?)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치기 위해 내려오는데, 이때 유비와 손권은 연합군을 구성해 맞선다.
 
1 대10의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을 이끄는 주유와 제갈량은 놀라운 지략과 병법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데··

 

삼국지의 3대 전투 모두 먼저 공격한 측이 패하고, 병력이 적은 쪽이 승리한 것을 보면 역시 전쟁은 백전백승보다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며, 경적(輕敵)은 필패(必敗)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동남풍 등 허구가 대부분인 이 전쟁의 자세한 스토리는 생략하고 대신 당나라 두목이 지은 '적벽회고(赤壁懷古)'란 시를 한 수 감상해 보자.

 

참고로 '이교(二喬)'란 재색을 겸비한 오나라의 대교(大喬)와 소교(小喬), 두 자매로 대교는 손책의, 소교는 주유의 아내를 말한다.

 

折戟沈沙鐵未銷(절극심사철미소)
모래에 묻힌 부러진 창 아직 녹슬지 않아

自將磨洗任前朝(자장마세임전조)
모래를 씻고 보니 앞 시대의 것임을 알겠네

東風不與周郞便(동풍불여주랑편)
동풍이 주랑(주유)을 편들지 않았다면

銅雀春深鎖二喬(동작춘심쇄이교)
봄 깊은 동작대에 두 미녀를 가두었으리

 

마치며

 

뛰어난 지모와 웅대한 전략, 천재적 재능으로 천하를 통일, 혼돈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조조,

 

'건안(建安)문학'의 주역으로 높은 산에 오르면 반드시 시를 짓고(登高必賦), 전쟁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手不舍書) 조조,

 

"내가 죽은 뒤에는 옛날의 장례 예법을 따르지 말도록 하라. 내 무덤 속에 황금, 옥 진귀한 보물은 절대로 넣지 마라. 장례는 간소하게 하고 끝나면 그날로 상복을 모두 벗도록 하라. 병사들은 주둔지를 떠나지 말고 관리들은 자기 직무에 충실하도록 하라."

 

일세를 풍미하던 그도 220년 66세를 일기로 운명을 달리하는데, 이후 그에 대한 평가는 '위(魏)정통론 (진수)'과 '촉(蜀)정통론(나관중)' 등 시대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바로 삼국지의 영웅들 중 패자(覇者)로 우뚝 솟은 '초세지걸(超世之傑)'이라는 평가와 후한을 멸망시킨 '난세의 간웅(奸雄)'이라는 상반된 평가다.

 

對酒當歌 人生幾何 (대주당가 인생기하)
술 마시며 노래하세. 사람의 인생 그 얼마인가?

譬如朝露 去日苦多 (비여조로 거일고다)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인생 괴로움 뿐이네

慨當以慷 幽思難忘 (개당이강 유사난망)
하염없이 강개에 젖어보지만 근심 지울 수 없네

何以解憂 惟有杜康 (하이해우 유유두강)
무얼로 이 근심 풀것인가, 오직 술 뿐이네

 

그가 지은 '短歌行(단가행)'이라는 시인데, 영웅(英雄)과 간웅(奸雄)은 술 한 잔의 차이도 나지 않는 것,

 

결국 우리가 삼국지에서 얻어야 할 최고의 교훈은 그 뿐만 아니라 유비, 손권 등 모든 영웅들도 끝내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는 평범한 진리가 아닐지··

 

문무(文武)를 겸한 최고의 정치가이자, 호방한 기상을 품어내는 빼어난 문학가였던 조조,

 

"난세'에도 '치세'에도 불세출의 영웅이었던 조조,

 

부족한 이 글을 통해 '소설 삼국지'와 '역사 삼국지'간의 간극이 조금이나마 좁혀지기를 바라며··

 

글·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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